2026년,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가 ‘미국 비축 현대화법(American Reserve Modernization Act, H.R.8957)’을 찬성 28표, 반대 21표로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안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형사·민사 몰수를 통해 연방정부가 확보한 비트코인을 재무부 산하 ‘전략적 비트코인 비축’으로 편입시키고, 이를 최소 20년간 팔지 못하게 못박는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시작한 전략자산 비축 구상을, 정권이 바뀌어도 뒤집을 수 없는 법률로 굳히려는 시도입니다. 비트코인이 국가 준비자산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이게 왜 지금 필요해졌는지 짚어봅니다.
지금 미국이 들고 있는 물량
현재 미국 정부는 약 32만4,527 BTC를 보유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법안 발표 시점 기준 약 247억 달러 규모입니다. 대부분 마약·사이버범죄 수사 과정에서 몰수한 자산입니다. 문제는 이 물량이 그동안 여러 연방기관에 흩어진 채 일관된 관리 없이 방치돼왔다는 점입니다. 법안을 발의한 니콜라스 베기치 하원의원은 이를 “용납할 수 없는 사이버보안 위험”이라 표현하며, 연방정부조차 자신이 실제로 무엇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을 지적했습니다.
두 개의 그릇으로 나누다
법안은 자산을 성격에 따라 다르게 관리하도록 설계했습니다. 비트코인은 ‘전략적 비트코인 비축’으로 따로 떼어 20년 최소 보유 의무를 적용하고, 그 외 알트코인들은 ‘디지털자산 비축고’라는 별도 그릇에 담아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관리합니다. 비트코인만 유독 이런 특별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미국 정부가 비트코인을 ‘디지털 금’에 가까운 자산으로 공식 인정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실제로 이 구조는 미국이 금을 포트녹스에 보관하며 함부로 매각하지 않는 방식과 개념적으로 닮았습니다.
투명성이라는 대가
장기 보유를 강제하는 대신, 법안은 투명성 장치를 촘촘하게 심어뒀습니다. 모든 연방기관이 보유·관리 중인 가상자산을 전면 보고해야 하고, 분기별로 ‘준비금 증명(Proof of Reserve)’ 보고서와 제3자 감사를 받아야 합니다. 이 개념은 낯설지 않습니다. 앞서 RWA 시장을 다루며 짚었던 체인링크의 준비금 증명 오라클과 정확히 같은 발상이, 이번엔 민간 발행사가 아니라 미국 연방정부 자신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토큰 뒤에 진짜 자산이 있는가”를 검증하던 장치가, 이제 “국가 뒤에 진짜 준비금이 있는가”를 검증하는 장치로 그대로 옮겨간 셈입니다.
자가수탁이라는 또 다른 축
법안에는 정부 보유분 관리와는 결이 다른 조항도 담겼습니다. 개인의 비트코인 소유권과 자가수탁 권리를 “디지털 시대의 금융 주권, 사생활, 개인의 자유를 위한 기본 원칙”으로 명문화한 부분입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같은 법안 안에 정부 보유 자산에 대한 투명성 강화(더 많은 보고와 감시)와 개인 보유 자산에 대한 권리 강화(정부 개입으로부터의 보호)가 동시에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는 자기 몫에는 더 엄격한 회계를, 개인의 몫에는 더 넓은 자유를 각각 다른 방향으로 법제화하고 있습니다.
남은 절차와 그 무게
이번 통과는 위원회 문턱을 넘은 것일 뿐, 법률로 확정되려면 하원 본회의와 상원을 모두 통과하고 대통령 서명까지 거쳐야 합니다. 다만 표결 결과(28대 21)만 보면, 상원에서 표류하고 있는 클래리티 법안보다는 정치적 저항이 상대적으로 덜한 것으로 보입니다. “시장 규제”보다 “전략자산 비축”이라는 프레임이 덜 논쟁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마치며
20년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보유 기간이 아니라, 비트코인을 향한 국가의 태도 자체를 바꾸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트레이딩의 대상에서 금과 같은 전략자산으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는 정책에서 법으로 못박힌 제도로. 이 변화가 완성되면, 시장은 미국 정부가 보유한 32만 BTC를 더 이상 언제 풀릴지 모르는 유동성 리스크가 아니라, 앞으로 20년간 묶여 있는 안정적 물량으로 다시 계산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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