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다룬 L1 전쟁(이더리움 vs 솔라나 vs 모나드)을 기술 스펙 비교로 풀었다면, 이번엔 같은 싸움을 손자병법의 언어로 다시 읽어봅니다. 2,500년 전 병법가가 남긴 통찰이, 지금 벌어지는 체인 경쟁의 전략적 구도를 뜻밖에 정확하게 비춰줍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 서로 다른 강점을 안다
손자는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나를 안다’는 부분입니다. 이더리움은 자신의 강점이 속도가 아니라 기관의 신뢰와 축적된 보안 이력이라는 걸 압니다. 그래서 굳이 솔라나와 속도 경쟁에 뛰어들어 기반 레이어 자체를 바꾸기보다, 레이어2로 확장을 떠넘기며 자신의 핵심 강점(안전성)을 지키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솔라나 역시 자신의 강점이 기관 자금의 신뢰가 아니라 개발자 경험과 처리 속도라는 걸 알기에, 그 쪽에 자원을 집중합니다. 서로 상대의 싸움터로 끌려가지 않고 각자의 싸움터에서 싸우는 것, 이게 지피지기의 실전 버전입니다.
병형상수 — 물처럼 강함을 피하고 빈틈을 친다
손자는 또한 “병형상수(兵形象水)” — 군대의 형세는 물을 닮아야 한다 — 라고 했습니다. 물은 높은 곳을 피해 낮은 곳으로 흐르듯, 군대도 적의 강함을 피해 허점을 쳐야 한다는 뜻입니다. 모나드 같은 신흥 도전자는 이더리움의 강함(기관 신뢰, 오랜 보안 이력)을 정면으로 들이받지 않습니다. 대신 이더리움의 상대적 약점, 즉 낮은 처리 속도와 높은 가스비라는 빈틈을 정확히 노립니다. 그것도 솔라나처럼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요구하는 정공법이 아니라, 이더리움과 호환되는 EVM을 그대로 유지한 채 속도만 끌어올리는 우회로를 택했습니다. 강한 곳을 피해 약한 곳으로 흐르는 물의 형세 그대로입니다.
상병벌모 — 최선의 전략은 상대의 계획을 치는 것
손자는 최상의 용병술로 “상병벌모(上兵伐謀)” — 적의 계획 자체를 치는 것 — 를 꼽았습니다. 직접적인 전투보다, 상대가 세운 전략의 전제 자체를 무력화하는 게 더 우월하다는 뜻입니다. 모나드의 전략이 정확히 이 결을 따릅니다. 이더리움 생태계의 진짜 자산은 코드 자체가 아니라 그 위에 쌓인 수많은 개발자와 그들의 익숙함입니다. 모나드는 새로운 생태계를 처음부터 쌓아 올리는 대신, “이더리움 개발자들이 배운 걸 그대로 쓸 수 있게 하겠다”는 방식으로 이더리움의 진짜 해자(개발자 락인)를 우회합니다. 상대의 군대와 싸우는 게 아니라, 상대가 그 군대를 유지하는 방식 자체를 겨냥하는 것입니다.
부전이굴인지병 — 싸우지 않고 이기는 자리
손자가 말한 최고의 경지는 “부전이굴인지병(不戰而屈人之兵)” — 싸우지 않고 상대의 군대를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이더리움이 지금 기관 자금 시장에서 누리는 위치가 이와 닮았습니다. 블랙록이나 프랭클린템플턴 같은 기관들이 이더리움을 선택하는 건 이더리움이 매번 경쟁에서 직접 승리를 증명해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신뢰 자체가 다른 선택지를 검토할 필요조차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싸우지 않고도 굴복시키는 힘, 그게 지금 이더리움이 쥐고 있는 무형의 우위입니다.
마치며
L1 전쟁은 결국 기술 스펙의 우열 다툼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강점을 정확히 알고 상대의 빈틈을 찾아 흐르는 전략적 게임에 가깝습니다. 승자독식이 아니라 역할 분담으로 귀결될 거라는 앞선 진단도, 손자의 눈으로 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서로 다른 싸움터에서 각자의 강점으로 싸우는 이들 사이에는, 애초에 승부를 가릴 단일한 전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북마크해두세요. Web3와 크립토의 핵심 개념들을 쉽게 설명하는 글을 계속 업로드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