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략적 비트코인 비축 법안을 다시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비대칭이 보입니다. 정부는 자기 자신의 비트코인 보유에는 분기별 준비금 증명과 제3자 감사라는 촘촘한 그물을 씌우면서, 동시에 개인의 비트코인 자가수탁 권리는 “디지털 시대의 금융 주권”이라는 이름으로 보호하겠다고 명시했습니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개인에게는 손을 떼겠다는 이 비대칭이, 노자가 말한 무위(無爲)의 통치술과 뜻밖에 정확히 겹칩니다.
무위이민자화
노자 도덕경 57장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아무위이민자화(我無爲而民自化)” —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백성이 스스로 교화된다. 이어지는 구절도 같은 결입니다. “아호정이민자정(我好靜而民自正)” —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니 백성이 스스로 바르게 된다. 이 통치술이 말하는 건 방임이 아닙니다. 통치자가 백성의 삶 구석구석에 개입하려 들수록 오히려 질서가 무너지고, 통치자가 손을 떼고 스스로 정돈되도록 놔둘 때 오히려 안정된 질서가 자라난다는 역설적 통찰입니다.
개인키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내려놓는 것도 이 원리와 닮았습니다. 만약 정부가 모든 개인 지갑의 키를 대신 관리하거나 강제 위탁을 요구했다면, 그 순간부터 모든 사이버보안 위험과 압류·동결 시비가 국가의 몫이 됩니다. 반대로 “당신의 키는 당신이 쥔다”고 선을 그으면, 그 책임과 자유가 고스란히 개인에게 돌아가며 오히려 시스템 전체가 더 견고해집니다. 무위가 방임이 아니라 정교하게 설계된 물러섬이듯, 자가수탁권 명문화도 국가의 무능이 아니라 의도된 후퇴입니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너그럽게
그런데 같은 법안이 정부 자신의 비트코인 보유에는 정반대 태도를 취합니다. 분기별 준비금 증명, 제3자 감사, 전면 보고 의무까지. 이건 무위와 모순되는 걸까요. 오히려 그렇지 않습니다. 도덕경은 통치자에게 무위를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통치자 자신의 그릇을 비우고 다스리라고 말합니다. 백성에게는 간섭하지 않되, 스스로에게는 더 엄정한 규율을 두는 것. 이 법안이 정부 보유분에는 엄격한 회계를, 개인 보유분에는 넓은 자유를 각각 다르게 적용한 구조가, 바로 이 오래된 이중적 태도의 현대적 재현입니다.
손을 떼는 것도 하나의 설계다
무위를 오해하기 쉬운 지점이 여기 있습니다. 손을 뗀다는 건 아무 일도 안 한다는 뜻이 아니라, 개입하지 않기로 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정교한 선택이라는 뜻입니다. 자가수탁권을 법으로 명문화하는 일은 사실 매우 적극적인 입법 행위입니다. 다만 그 내용이 “국가가 여기서는 손을 떼겠다”는 선언이라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개입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것도, 개입하는 것만큼이나 신중한 설계가 필요한 통치 행위입니다.
무위에도 한계는 있다
다만 이 무위를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읽으면 곤란합니다. 앞서 “자금세탁과 비트코인” 글에서 다뤘듯, 국가는 개인키 자체를 통제하는 대신 그 개인키가 현실 세계와 만나는 접점(거래소, 수탁기관)에서는 여전히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촘촘히 지웁니다. 즉 이 법안이 선언하는 무위는 개인키라는 좁은 영역에 한정된 것이지, 비트코인이 오가는 모든 경로에 대한 전면적인 불간섭이 아닙니다. 노자의 무위도 통치자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무정부 상태를 뜻하지 않았듯, 이 법의 무위도 정교하게 경계선이 그어진 부분적 물러섬입니다.
마치며
한 법안 안에서 국가는 자신에게는 촘촘한 그물을, 개인에게는 넓은 자유를 동시에 짜 넣었습니다. 얼핏 모순처럼 보이는 이 이중성이, 사실은 2,500년 전 노자가 말한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백성에게는 고요히 물러서는” 통치술의 아주 현대적인 판본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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