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을 가서 공항 환전소에 원화를 맡기고 현지에서 쓸 수 있는 보관증을 받았다고 해 보겠습니다. 보관증은 현지에서 통용되지만, 공항 금고가 털리면 보관증은 휴지가 됩니다. 브릿지란 이 구조를 블록체인 사이에 옮긴 것입니다. 이 블로그의 토네이도 캐시 글과 크로스체인 글에서도 브릿지가 여러 번 등장합니다. 이 글은 그 글들을 읽을 때 기준이 되는 개념을 먼저 정리합니다. 원리와 위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설명이며, 브릿지 이용법이나 공격 방법은 다루지 않습니다.
브릿지는 왜 필요한가
이더리움, 솔라나, 비트코인 같은 블록체인은 서로 연결되지 않은 섬과 같습니다. 이더리움의 이더는 이더리움 장부 안에서만 존재합니다. 다른 체인의 서비스에서 이를 쓰고 싶다면 자산이 실제로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한쪽에 자산이 묶여 있다는 사실을 다른 쪽이 믿어 주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브릿지가 하는 일이 이것입니다. 브릿지는 자산을 옮기는 도구가 아니라 “잠갔다는 사실”을 전달하는 장치이고, 그래서 안전성은 누가 그 사실을 검증하느냐에서 나옵니다.
세 가지 작동 방식
첫째는 잠그고 보관증을 발행하는 방식(lock-and-mint)입니다. 사용자가 원래 체인의 스마트컨트랙트에 자산을 맡기면 목적지 체인에서 그 자산을 대표하는 래핑 토큰이 발행됩니다. 앞의 환전소 비유와 같습니다. 약한 고리는 맡겨진 자산이 쌓여 있는 금고입니다.
둘째는 한쪽에서 소각하고 다른 쪽에서 새로 발행하는 방식(burn-and-mint)입니다. 서클의 CCTP가 USDC에 쓰는 방식으로, 원래 체인에서 USDC를 소각하면 서클이 소각 사실을 확인해 서명하고, 그 서명으로 목적지 체인에서 새 USDC가 발행됩니다. 서클은 이 방식이 제3자 컨트랙트에 자산을 묶어 두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다만 이는 신뢰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발행사에게로 옮겨간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셋째는 양쪽 체인에 준비한 유동성 풀에서 맞교환하는 방식입니다. 한쪽에서 받은 자산만큼 다른 쪽 풀에서 내주기 때문에 래핑 토큰은 만들지 않지만, 양쪽 풀에 자금이 쌓여 있어야 합니다.

어느 방식이든 “한쪽에서 실제로 맡기거나 소각했다”는 사실을 누군가 확인해 목적지 체인에 알려야 합니다. 검증의 주체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검증자 집단이나 멀티시그로, 정해진 인원 중 일정 수 이상이 서명하면 승인됩니다. 다른 하나는 브릿지와 별개인 외부 검증자입니다. 마지막은 체인 자체의 검증으로, 레이어2의 공식 브릿지가 대표적이며 옵티미스틱 롤업은 일반적으로 출금에 약 7일의 대기 기간이 있습니다. 검증이 느슨할수록 빠르고 쌉니다. 반대로 엄격할수록 느리고 비쌉니다. 이 선택이 곧 위험의 크기를 정합니다.
왜 해킹이 잦은가
먼저, 팩트입니다. 체이널리시스에 따르면 2022년 8월까지 브릿지 해킹 피해는 약 20억 달러로 그해 도난액의 69%였습니다. 이 수치는 2022년 시점입니다. 대표 사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2022년 3월 로닌 브릿지에서 약 6억 2,500만 달러가 도난됐고(출처에 따라 6억 1,500만 달러로도 적힙니다), FBI는 북한 라자루스 그룹을 지목했습니다. 검증자 키 9개 중 5개만 확보하면 됐다고 CNBC는 전했고, 사용자가 5,000이더 출금이 안 된다고 신고한 뒤에야 해킹을 알았다고 합니다. 워엄홀은 약 3억 2,000만 달러, 노마드는 약 2억 달러였고 노마드는 검증 로직의 단순한 결함이 원인이었습니다. 하모니는 5개 계정 중 2개만 장악하면 출금이 가능했고 피해는 약 1억 달러였습니다. 2026년 4월에는 켈프 DAO의 rsETH가 LayerZero 기반 브릿지를 통해 약 2억 9,300만 달러 규모로 도난됐다고 블룸버그가 보도했습니다. 원인 설명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브릿지는 자금이 한곳에 모이고, 안전성이 소수의 검증 지점에 달려 있는 구조입니다. 노리는 쪽에서 보면 효율이 높은 표적입니다. 다만 사고가 많다는 사실이 모든 브릿지가 위험하다는 뜻은 아니며, 검증 구조에 따라 위험은 크게 다릅니다.
뉴스를 읽을 때 던질 네 가지 질문
누가 검증하는가, 몇 명이 키를 쥐고 있는가(몇 명 중 몇 명이 서명하는가), 얼마가 잠겨 있는가, 사고 이력과 감사 기록은 어떤가. 이 네 가지만 봐도 브릿지 뉴스의 절반은 해석됩니다. 이는 이해를 위한 질문이며 특정 브릿지의 이용을 권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알아두면 좋은 용어
래핑 토큰은 다른 체인에 맡긴 자산을 대표해 발행되는 보관증 성격의 토큰입니다. 검증자는 맡김이나 소각 사실을 확인해 승인하는 주체입니다. 임계값(m-of-n)은 n명 중 m명이 서명해야 승인되는 규칙으로, 로닌은 9명 중 5명이었습니다. 최종성은 거래가 되돌려지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 시점입니다.
정리하며
브릿지는 자산이 건너가는 통로가 아니라 “잠갔다는 사실”을 믿게 하는 장치입니다. 앞서 다룬 「크로스체인 전쟁, 무기가 바뀌었다」에서 맞춤형 검증자가 핵심이 된 이유도, 「토네이도 캐시란 무엇인가」에서 로닌 해킹 자금이 거론된 이유도 이 구조에서 이어집니다. 검증을 누가 맡느냐를 보면 다리의 안전성이 보입니다.
토네이도 캐시란 무엇인가 — 블록체인의 ‘유리 지갑’에 커튼을 치는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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