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미국 중심의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국내 결제·정산 인프라를 잠식하면 금융 주권 종속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맞을 수 있다”며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논리는 직관적입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밀려오기 전에 원화로 된 방벽을 세우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내놓은 분석은 이 논리를 정면으로 흔듭니다. 자국 통화 스테이블코인을 만드는 게 오히려 달러 스테이블코인 수요를 더 키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IMF의 반박 — 같은 인프라 위에 있으면 결국 달러로 간다
댄 카츠 IMF 수석부총재는 8월 케이프타운대학교 강연에서 이 역설을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자국 통화 스테이블코인과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같은 블록체인 인프라 위에서 운영되면, 이용자들은 탈중앙화 거래소나 유동성 풀, 개인 간 교환을 통해 언제든 둘을 맞바꿀 수 있습니다. 즉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만드는 행위 자체가 “온체인 지갑을 쓰는 습관”을 대중에게 심어주는 일이고, 일단 그 지갑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유동성이 훨씬 풍부하고 국경을 넘나들기 쉬운 달러 토큰 쪽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갈 유인을 갖게 됩니다. 실제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례에서는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확산도 제한적이었지만, 랜드화 연동 토큰에 대한 수요는 그보다도 더 적었습니다. 카츠는 유동성, 네트워크 효과, 국경 간 수용성이라는 이유로 이용자들이 결국 달러 토큰을 선호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습니다.
BIS와 코넬대의 경고 — 탈달러가 아니라 달러 패권 강화
국제결제은행(BIS) 총재 파블로 에르난데스 데 코스도 비슷한 우려를 냈습니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이 “금융건전성에 심각한 위험을 일으키고 규제 회피를 용이하게 하며, 달러화(dollarisation) 위험을 심화시킨다”고 지적했습니다. 코넬대 에스와르 프라사드 교수의 분석은 한발 더 나아갑니다. 블록체인과 스테이블코인 확산이 달러 중심 체제를 흔들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금융시장과 제도적 기반이 약한 국가일수록 오히려 달러 의존도가 높아지고 통화주권이 약화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 비중이 2000년 71%에서 57%까지 낮아지는 동안, 유로·엔·파운드 같은 전통 경쟁 통화도 함께 입지를 잃었고 위안화 국제화도 정체된 상태입니다. 달러의 상대적 지위가 흔들리는 게 아니라, 경쟁 통화들이 다 같이 약해지는 구도라는 뜻입니다.
한국은 예외일 수 있을까
다만 이 경고가 모든 나라에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경제저널리스트 폴 블루스타인은 5월 아시아금융포럼에서 “한국처럼 금융 시스템이 안정된 국가에서는 상대적으로 문제가 덜하겠지만, 자본 유출 위험이 큰 저개발국이나 신흥국에서는 금융위기를 촉발하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신흥국 국민들이 자국 통화 대신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무분별하게 쓰기 시작하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영향력이 무력화되는데, 한국은 상대적으로 이 경로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다는 진단입니다.
그래도 남는 위험 — 위기의 순간
그렇다고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IMF 이코노미스트 브랜던 조엘 탄의 실무 논문은 평상시가 아니라 환율이 불안해지는 위기 국면을 짚습니다. 스테이블코인 가격은 시장 전체가 참고하는 눈에 보이는 지표가 되는데, 환율 스트레스가 커지는 순간 이 가격이 오히려 자국 통화 이탈을 동조화시켜 통화런을 키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잠잠하다가, 정작 통화 주권이 가장 절실히 필요한 위기의 순간에 취약점이 드러나는 구조라는 뜻입니다.
마치며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만든다고 해서 저절로 통화주권이 지켜지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인프라가 달러 토큰으로 건너가는 다리를 놓아줄 수도 있다는 게 IMF의 경고입니다. 앞선 글에서 짚었던 은행 51% 룰 논쟁이 “누가 발행할 것인가”를 다투는 싸움이었다면, 이번 분석이 던지는 질문은 한 단계 더 근본적입니다. 발행 주체를 누구로 정하든, 그 위에서 결국 이용자들이 어떤 통화를 선택할지는 법이 아니라 유동성과 네트워크 효과가 정한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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