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는 줄고 수탁은 두 배로 — 수요보다 먼저 깔리는 인프라

2021년 12월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제가 시행된 이후,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는 24곳에서 18곳으로 줄었습니다. 같은 기간 지갑·보관업체는 5곳에서 11곳으로 두 배 넘게 늘었습니다. 금융정보분석원(FIU) 집계를 인용한 10월 7일 보도 기준이며, 전체 사업자 수는 29곳에서 28곳으로 거의 같습니다. 숫자는 비슷한데 구성이 바뀌었습니다. 시장의 무게가 코인을 사고파는 회사에서 맡고 옮기는 회사로 옮겨가고 있는 것일까요. 사실과 해석을 구분해서 살펴보겠습니다.

5년 사이 바뀐 지형
사실부터 정리하겠습니다. 거래소가 줄어든 가장 큰 이유로 보도는 원화마켓이 아닌 코인마켓 거래소의 수익성 악화를 꼽았습니다. FIU와 금융감독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5년 하반기 코인마켓 거래소의 영업손실은 151억원이었습니다. 원화마켓을 운영하려면 은행의 실명확인 계좌가 필요한데, 제휴를 맺지 못한 코인마켓 거래소는 거래량을 키우기 어렵습니다. 거기에 자금세탁방지, 보안, 이용자 보호 비용은 계속 올라갑니다. 진입 문턱도 높아졌습니다. 개정 특정금융정보법이 8월 20일 시행되면서 신고 심사에서 대주주의 적격성까지 보게 됐고, 부채비율은 원칙적으로 200% 이하, 자금세탁방지 담당 인력은 원칙적으로 4명 이상이 요구됩니다. 대주주가 바뀔 때는 30일 전에 미리 신고해야 합니다.

글로벌 기업의 새로운 진입 방식
신규 사업자의 모습도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해외 업체가 기존 국내 사업자를 인수하는 방식이 많았습니다. 크립토닷컴은 오케이비트를, 바이낸스는 고팍스 지분을 인수했습니다. 반면 글로벌 디지털자산 인프라 기업 비트고의 한국 법인 비트고코리아는 새 법인을 세운 뒤 직접 심사를 받아 8월 18일 VASP 신고수리를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하나금융그룹이 약 25%, SK텔레콤이 약 10%의 지분을 갖고 있고, 기술은 본사에서 들여오되 정보보호와 내부통제 체계는 국내 기준에 맞춰 새로 구축했다고 합니다. 문페이도 9월 한국 법인 출범을 공식화하고 VASP 신고 등 인허가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문페이는 KB금융, 우리은행, 카카오뱅크 등과의 협력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이는 가능성 제시 단계이고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제도화된다는 전제가 붙어 있습니다.

같은 방향, 다른 단계
여기까지가 기사가 전하는 사실이고, 이제 해석입니다. 기관이 가상자산을 직접 쥐려면 안전하게 맡길 곳이 필요합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현물 ETF가 거래되고 있고, SEC도 수탁 규칙 개편을 논의하는 등 수탁 인프라가 수요에 이끌려 움직이는 모양새입니다. 한국의 수탁업체 증가도 같은 방향으로 보입니다. 다만 한국은 단계가 다릅니다. 보도에 따르면 지갑·보관업자의 수탁고는 2025년 하반기 3,000억원으로, 직전 반기 7,000억원에서 58% 줄었습니다. 비교 기준은 보도마다 다르게 적혀 있지만 줄었다는 점은 같습니다.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 허용도 더딥니다. 금융위가 2025년 2월 단계적 허용 로드맵을 내놨지만, 2026년 4월 시점에는 상장법인 투자 가이드라인 발표가 지연되고 있었고 디지털자산기본법도 국회 소위 안건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사업자는 늘었는데 맡길 법인 수요는 아직 열리지 않았습니다. 현재 수요보다 향후 기관시장을 겨냥한 선점 경쟁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수요가 열릴지는 제도에 달려 있습니다.

자격을 갖춘 관문으로의 재편?
한 가지 더 해석을 덧붙이면, 진입 요건 강화와 글로벌·금융권 사업자의 진입은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자본력과 자금세탁방지 역량을 갖춘 사업자가 제도권 안의 관문 역할을 맡는 구조입니다. 영세 사업자는 문턱 앞에서 정리되고, 그 자리를 자본과 규제 대응력을 갖춘 사업자가 채우는 모양세입니다.

지켜볼 지표
다섯 가지입니다. 법인 참여 허용의 시행 여부와 범위, 지갑·보관업자의 수탁고 추이, 비트고코리아의 기관 고객 확보, 문페이의 VASP 신고수리 여부,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제도화입니다. 수탁고가 다시 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이 인프라가 수요를 만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선점 경쟁이 먼저 시작됐다는 사실이 확인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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