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원화, 실질은 달러 — 순자의 정명으로 읽는 스테이블코인

공자의 정명(正名)을 앞서 크레이그 라이트의 거짓 사토시 참칭에 적용해봤다면, 이번엔 같은 개념을 더 정교하게 다듬은 순자의 정명론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읽어보려 합니다. 순자는 「정명」편에서 이름이 사물에 본래부터 딱 들어맞는 게 아니라 사회적 약속으로 정해진다고 봤습니다. “명무고의(名無固宜)” — 이름에는 원래부터 정해진 마땅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일단 약속이 정해지면, 그 이름과 실제가 어긋나기 시작할 때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진다고 경고했습니다.

원화라는 이름이 약속하는 것
‘원화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이름은 사회적으로 하나의 약속을 전제합니다. 이 토큰을 쥐고 있으면 원화의 가치, 원화의 흐름, 원화 결제망 안에 머문다는 약속입니다. 민병덕 의원이 이 제도 도입을 서두르자고 말할 때 기대하는 것도 정확히 이 약속입니다. 이름이 원화이니 실질도 원화의 영역 안에서 순환하리라는 전제입니다.

약속과 실제가 갈라지는 지점
그런데 앞서 IMF 댄 카츠 부총재의 분석에서 확인했듯,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같은 온체인 인프라 위에서 돌아가면 이용자들은 탈중앙화 거래소나 유동성 풀을 통해 언제든 둘을 맞바꿀 수 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랜드화 연동 토큰보다 달러 연동 토큰 수요가 더 컸던 것처럼, ‘원화’라는 이름을 달고 발행된 토큰이라도 실제 자금의 흐름은 유동성이 풍부한 달러 쪽으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이름은 원화인데 실질은 달러의 통로가 되는 상황, 순자가 경계했던 명실(名實)의 어긋남이 정확히 이 지점에서 발생합니다.

어지러운 이름이 백성을 혼란케 한다
순자는 이런 어긋남을 “난명이혹민(亂名以惑民)” — 이름을 어지럽혀 백성을 미혹시킨다 — 이라 불렀습니다. 다만 이 어긋남이 반드시 누군가의 의도적 기만에서 나오는 건 아닙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이름을 붙인 입법자에게 백성을 속일 의도는 없습니다. 오히려 통화주권을 지키겠다는 선의가 출발점입니다. 문제는 선의로 붙인 이름조차, 그 이름이 전제하는 약속을 실제 시장의 힘(유동성, 네트워크 효과)이 뒷받침해주지 못하면 결국 이름과 실질이 갈라진다는 데 있습니다. 의도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뜻입니다.

공자와 순자, 같은 정명이지만 다른 결
흥미로운 건 순자의 정명이 공자의 정명과 결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공자는 이름과 실질이 원래 하나로 정해져 있고, 그 올바른 관계가 무너졌으니 바로잡아야 한다는 입장에 가까웠습니다. 반면 순자는 애초에 이름이란 인간이 편의상 붙인 약속일 뿐, 하늘이 정해준 고정된 관계가 아니라고 봤습니다. 이 차이가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에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원화”라는 이름이 본래부터 신성불가침한 게 아니라, 우리가 이 제도에 무엇을 기대하고 어떤 약속을 걸지 스스로 정하는 문제라는 뜻입니다. 이름을 지키지 못했다고 배신당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그 이름에 걸맞은 실질을 함께 설계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관점입니다.

이름을 지키려면 실질을 만들어야 한다
순자의 해법은 이름을 강제로 단속하는 게 아니라, 그 이름에 걸맞은 실질을 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이름이 실제로 원화의 약속을 지키려면, 법으로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원화 표시 자산의 유동성과 사용처, 국경을 넘나드는 수용성까지 실질적으로 갖춰져야 그 이름이 비로소 정명(正名)이 됩니다. 이름 하나만 지어놓고 실질이 따라오길 기다리는 순서로는, 순자가 경고한 어긋남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마치며
‘원화’라는 이름을 법으로 붙이는 일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 이름이 실제로 지켜지려면, 이름 뒤에 그만한 유동성과 신뢰라는 실질이 뒤따라야 합니다. 순자가 2,300년 전에 남긴 이 통찰은, 지금 국회에서 오가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에도 정확히 되돌아와 묻고 있습니다. 이름을 지었으니 실질도 따라올 것이라 믿는가, 아니면 실질을 먼저 만들 것인가.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북마크해두세요. Web3와 크립토의 핵심 개념들을 쉽게 설명하는 글을 계속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