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붙이는 순간 어긋난다
노자 도덕경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말할 수 있는 도는 늘 그러한 도가 아니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어떤 실체를 언어로 규정하는 순간, 그 언어는 이미 실체 그 자체가 아니라 실체를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해집니다. 이 통찰을 백서라는 텍스트에 그대로 적용해보면 흥미로운 독법이 열립니다.
백서가 스스로를 부르는 이름
BTCMobick 백서는 자신의 거버넌스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투명성, 지속가능성, 자율성이라는 핵심 가치 위에 세워졌다.” “특정 개인의 통제에 의존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독립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영되도록 설계됐다.” “탈중앙화되고 자기 통치적인 프레임워크를 구축한다.” 이 문장들은 하나의 이름입니다. 프로젝트가 스스로에게 붙인 이름이 “탈중앙화 자율 거버넌스”라는 것입니다.
실제 구조는 다른 문장으로 읽힌다
그런데 같은 백서 안에서 실제 구조를 설명하는 부분을 읽으면 다른 그림이 나옵니다. 최종 의사결정권은 창시자가 최대주주인 오태버스라는 사기업에 있습니다. 126명으로 구성된 모빅 카운슬조차 인사위원회가 추천한 뒤 창시자 개인의 최종 승인을 거쳐야 구성됩니다. 이 카운슬은 2025년에야 공식 출범했습니다. 완전한 퍼블릭 체인 전환은 애초 계획보다 미뤄져 2029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건 “이름”이 아니라 “실(實)” — 실제로 관찰 가능한 구조입니다.
명실상부와 명실불부 사이
동아시아 사유 전통에는 명(名)과 실(實)이 일치하는가를 따지는 오랜 관습이 있습니다. 명실상부(名實相符)는 이름과 실제가 서로 부합한다는 뜻이고, 그 반대는 명실이 어긋난다는 뜻입니다. 백서의 “자율 거버넌스”라는 이름과 “창업자 최종 승인”이라는 실제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있습니다. 다만 노자의 통찰이 흥미로운 지점은, 이 간극을 단순히 “거짓말”로 단죄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노자는 애초에 모든 이름이 실체를 완전히 담아내지 못한다고 봤습니다. 문제는 간극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간극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가입니다.
백서 자신도 이 간극을 알고 있다
실제로 백서는 이 어긋남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초기 단계에는 강한 리더십이 명확한 비전과 추진력을 제공하기 위해 필수적이다”라고 명시하며, 창업자 중심 구조가 지금 단계의 필요에 따른 선택임을 밝힙니다. 그리고 권한이 “점진적으로” 분산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지금의 “명(名)”이 지금의 “실(實)”과 다르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고, 그 격차를 미래의 어느 시점에 좁히겠다는 약속으로 대체해두고 있는 셈입니다. 이건 거짓 명명이라기보다, 아직 도달하지 못한 이름을 미리 걸어두고 그쪽으로 걸어가겠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이름을 읽는 태도
노자식으로 읽으면, 이 백서를 향한 가장 정확한 태도는 “탈중앙화라는 이름이 거짓이다”라고 단정하는 것도, “이름 그대로 이미 탈중앙화됐다”고 순진하게 믿는 것도 아닙니다. 이름은 늘 실체보다 앞서 달려가는 손가락일 뿐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실제 발걸음이 얼마나 따라가고 있는지를 계속 지켜보는 것입니다. 2029년이라는 시점이 왔을 때, 그 손가락과 발걸음이 실제로 만나는지가 이 프로젝트의 명실상부 여부를 가릴 진짜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마치며
도가도 비상도는 이천오백 년 전의 통찰이지만, 백서를 읽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유효한 독법을 제공합니다. 어떤 조직이 스스로를 부르는 이름과 그 조직의 실제 구조 사이에는 언제나 간극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건 그 간극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이름이 실제를 따라잡는 과정을 계속 지켜보는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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