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히 오르던 토큰 가격이 특정 날짜에 갑자기 급락하는 걸 본 적 있다면, 그 날짜가 언락(락업 해제) 일정과 겹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차트만 봐서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공급 쪽 사정을 알면 이해가 됩니다.
락업이란
프로젝트 초기에 팀, 투자자, 재단이 받은 토큰을 일정 기간 동안 팔지 못하게 묶어두는 장치입니다. 만약 락업이 없다면 팀과 초기 투자자가 상장 첫날 물량을 전부 던져버릴 수 있습니다. 이들은 매우 낮은 가격에 토큰을 받았기 때문에 조금만 올라도 팔면 이익입니다. 반면 일반 투자자는 상장 이후 시장가에 사들인 만큼, 이런 매도 물량에 그대로 노출되어 손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락업은 이런 구조적 불공정을 최소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베스팅이란
락업이 풀리는 방식을 뜻합니다. 한 번에 다 풀리는 게 아니라 정해진 일정에 따라 조금씩 풀립니다. 흔히 쓰이는 구조는 1년 클리프(그 기간 동안은 전혀 풀리지 않음) 이후 3년에 걸쳐 매달 일정 비율씩 풀리는 방식입니다. 클리프가 끝나는 첫날 한꺼번에 큰 물량이 풀리기 때문에, 이 시점이 가격에 가장 큰 충격을 줍니다. 이후로는 매달 소량씩 풀리므로 상대적으로 충격이 완만합니다.
왜 투자자가 이걸 확인해야 하는가
팀과 VC 물량이 전체 유통량 대비 얼마나 큰지, 언제 풀리는지를 미리 알면 예상치 못한 급락에 놀라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대형 언락이 예정된 시점 직전에는 매도 압력을 예상하는 투자자들이 먼저 움직이기도 하고, 실제 언락 이후에도 물량이 시장에 흡수되는 데 며칠에서 몇 주가 걸리기도 합니다. 토큰이코노믹스 문서나 Token Unlocks 같은 웹사이트에서 프로젝트별 언락 일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총공급량 대비 현재 유통량 비율, 다음 언락까지 남은 기간, 그 언락 규모가 전체 유통량의 몇 퍼센트인지를 함께 보는 게 도움이 됩니다.
좋은 베스팅과 나쁜 베스팅
팀과 투자자 물량이 최소 1년 이상의 클리프를 두고, 그 이후로도 여러 해에 걸쳐 천천히 풀리는 구조가 상대적으로 안전합니다. 반대로 락업 기간이 짧거나, 초기 유통량 대비 락업된 물량 비율이 지나치게 크면 언락 시점마다 큰 매도 압력을 각오해야 합니다. 팀 물량이 전체 공급량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면서 락업 기간이 6개월에 불과한 경우처럼, 겉으로는 락업이 있어 보여도 실질적인 보호 효과가 약한 사례도 있습니다.
공급이 정해진 것과 늘어나는 것의 차이
비트코인처럼 채굴을 통해 서서히 공급이 늘어나는 자산과, 신생 프로젝트처럼 초기에 전체 공급량을 미리 다 발행해두고 베스팅으로 시장에 풀어내는 자산은 공급 압력의 성격이 다릅니다. 후자의 경우 베스팅 일정 자체가 사실상 향후 몇 년간의 인플레이션 스케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스케줄을 모르고 투자하는 건, 회사의 유상증자 계획을 모르고 주식을 사는 것과 비슷합니다.
락업이 없거나 짧은 경우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
일부 신생 프로젝트는 아예 락업 없이 상장하거나, 형식적으로 몇 주짜리 짧은 락업만 걸어둡니다. 팀 입장에서는 자금을 빨리 회수할 수 있어 유리하지만, 일반 투자자 입장에서는 상장 직후부터 대규모 매도 물량과 경쟁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특히 유동성 풀 규모가 작은 신생 토큰에서 이런 매도가 한꺼번에 나오면, 가격이 짧은 시간에 급격히 무너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대형 프로젝트일수록 투자자와 커뮤니티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더 긴 락업을 자처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마치며
토큰 가격은 결국 수요와 공급으로 움직입니다. 베스팅 일정은 그 공급 쪽이 언제, 얼마나 늘어나는지를 미리 알려주는 지도입니다. 투자 전에 한 번쯤 확인해볼 가치가 있는, 어쩌면 프로젝트 백서보다 더 실질적인 정보입니다.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북마크해두세요. Web3와 크립토의 핵심 개념들을 쉽게 설명하는 글을 계속 업로드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