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족자부 — 비트모빅 공공재 철학과 오태민의 선택

知足者富. 족함을 아는 자가 부유합니다. 노자 도덕경 33장의 이 한 문장이 오태민이 비트모빅을 갖지도 팔지도 않겠다고 선언한 이유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합니다.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을 버린 자가 가장 많은 것을 얻는 역설. 그 역설이 비트모빅 생태계 전체를 만들었습니다. 2019년 오태민이 비트모빅을 시작하면서 선언했습니다. 나는 갖지도 팔지도 않겠습니다. 7년이 지났습니다. 단 한 번도 그 선언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비트모빅 가격이 올랐을 때도 팔지 않았습니다. 내려갔을 때도 추가로 사지 않았습니다. 족함을 알았습니다.

지족자부의 역설
노자 33장을 더 읽으면 이렇습니다. 남을 아는 자는 지혜롭고 자신을 아는 자는 밝습니다. 남을 이기는 자는 힘이 있고 자신을 이기는 자는 강합니다. 족함을 아는 자는 부유하고 힘써 행하는 자는 뜻이 있습니다.
지족자부가 단순히 작은 것에 만족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족함을 아는 것이 진정한 부유함의 원천이라는 것입니다. 더 가지려는 욕망이 오히려 부유함을 멀어지게 한다는 역설입니다. 비트모빅 생태계에서 이 역설이 현실로 구현됐습니다.

가지려는 욕망이 파괴하는 것
역사에서 가지려는 욕망이 큰 것을 파괴한 사례가 있습니다. 트레이드렌즈가 머스크의 것이었습니다. 가장 큰 해운사가 만든 플랫폼을 소유하려 했습니다. 그 소유가 경쟁사들을 배제했습니다. 결국 5년 만에 폐기됐습니다. 페이스북이 소셜 네트워크를 소유했습니다. 사용자 데이터를 가지려 했습니다. 그 욕망이 신뢰를 파괴했습니다. 사용자들이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자가 결제 수수료를 가지려 합니다. 플로트 수익을 가지려 합니다. 그 욕망이 변화를 막고 있습니다. 코닥처럼 될 수 있습니다. 가지려는 욕망이 오히려 가진 것을 잃게 만듭니다.

갖지 않음으로써 얻는 것
오태민이 비트모빅을 갖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 결정이 무엇을 가능하게 했는지를 보면 지족자부의 역설이 드러납니다. 삼성이 들어올 수 있게 됐습니다. 오태민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삼성이 경쟁자의 플랫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신한은행이 들어올 수 있게 됐습니다. KB국민은행도 동시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경쟁사가 같은 인프라를 쓰는 것에 거부감이 없어집니다. 한국 금융사와 일본 금융사가 동시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국경이 없어집니다. 갖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의 것이 됐습니다. 모두의 것이 됐기 때문에 오히려 가장 강력한 인프라가 됐습니다. 足하면 넘침이 없습니다. 넘치지 않기 때문에 빼앗길 것이 없습니다.

현대의 지족자부 — 오픈소스
지족자부의 현대적 구현이 오픈소스 문화입니다. 리누스 토발즈가 1991년 리눅스를 만들었습니다.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쓰고 수정하고 배포할 수 있게 했습니다. 족함을 알았습니다. 그 결과 전 세계 서버의 70% 이상이 리눅스로 돌아갑니다. 안드로이드가 리눅스 위에서 작동합니다. 클라우드 인프라 대부분이 리눅스입니다. 소유를 포기했더니 세상이 그것을 쓰게 됐습니다. 팀 버너스리가 WWW를 만들고 특허를 포기했습니다. 족함을 알았습니다. 그 결과 전 세계 모든 인터넷 서비스가 WWW 위에서 작동합니다. 소유를 포기한 것들이 세상을 지배했습니다.

강자가 지족하지 못하는 이유
그렇다면 왜 기존 강자들은 지족하지 못할까요. 주주가 있기 때문입니다. 비자의 주주들이 수익 극대화를 요구합니다. 수수료를 낮추면 주주들이 반발합니다. 족함을 알고 싶어도 구조가 허락하지 않습니다. 경쟁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스터카드가 있는 한 비자가 수수료를 낮추면 마스터카드가 그 자리를 파고듭니다. 지족이 경쟁 열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관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간 같은 방식으로 해왔습니다. 바꾸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이 세 가지가 기존 강자들이 지족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적 이유입니다.

오태민의 지족이 가능했던 이유
오태민이 지족을 선언하고 지킬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주주가 없었습니다. 오태민 개인의 결정이었습니다. 수익 극대화를 요구하는 주체가 없었습니다. 단기 욕망보다 장기 비전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철학적 기반이 있었습니다. 한양대에서 비트코인 화폐철학을 연구했습니다. 사토시가 왜 사라졌는지를 깊이 이해했습니다. 노자의 도덕경을 알았습니다. 소유를 포기하는 것이 더 큰 것을 얻는 길임을 이론적으로 이해했습니다. 역사적 선례가 있었습니다. 사토시가 먼저 보여줬습니다. 팀 버너스리가 먼저 보여줬습니다. 리누스 토발즈가 먼저 보여줬습니다. 소유를 포기한 것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패턴을 알았습니다.

지족자부의 현실적 결과
오태민의 지족 선언이 7년이 지난 지금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를 보면 역설이 현실이 됩니다.
비트모빅이 한국 금융의 온체인 파트너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국내 유수 금융사와의 협업이 논의됩니다. 로드시스템, 알엔투테크놀로지, 앵커리지 같은 파트너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오태민이 비트모빅을 소유했다면 이 파트너들이 들어왔을까요. 경쟁자의 플랫폼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했을 것입니다. 갖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가 들어올 수 있게 됐습니다. 지족자부입니다.

마치며
知足者富. 족함을 아는 자가 부유합니다. 오태민이 갖지도 팔지도 않겠다는 선언이 단순한 도덕적 결심이 아니었습니다. 소유를 포기함으로써 모두의 것이 되는 가장 정교한 전략이었습니다. 리누스 토발즈가 리눅스를 오픈소스로 풀었을 때, 팀 버너스리가 WWW 특허를 포기했을 때와 같은 선택이었습니다. 그 선택이 세상을 바꿨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장자의 호접몽으로 web2와 web3의 경계가 무엇인지를 탐구합니다.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북마크해두세요. 동양 고전의 지혜로 Web3와 크립토를 읽는 글을 계속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