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처음부터 ‘검열저항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웠습니다. 어떤 거래도 누군가의 판단으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상입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설계 목표가 아니라, 국가나 금융기관 같은 중앙 권력 없이도 질서가 가능하다는 정치철학적 선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여러 체인의 실제 대응, 특히 아비트럼이 해킹 자금을 위원회 투표로 동결한 사건을 들여다보면, 묘하게 겹치는 질문 하나가 떠오릅니다. 17세기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던졌던 바로 그 질문입니다.
홉스의 질문 — 왜 인간은 자유를 양도하는가
홉스는 주권자도 법도 없는 ‘자연상태’를 상상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보장받지 못하기에,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비참하고 잔인하며 짧다”고 묘사했습니다. 모두가 자유롭지만, 바로 그 자유 때문에 아무도 안전하지 않은 역설입니다. 홉스의 해법은 사회계약이었습니다. 각자가 가진 자연적 자유의 일부를 포기하고, 그 권리를 한 명의 주권자 또는 하나의 기구, 즉 ‘리바이어던’에게 넘김으로써 질서와 안전을 산다는 논리입니다. 자유를 조금 내주고 생존을 보장받는 거래인 셈입니다.
블록체인의 ‘자연상태’ 실험
검열저항성은 사실 홉스의 질문에 대한 반론으로 설계된 것에 가깝습니다. “주권자 없이도 질서가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실험입니다. 이더리움이 FOCIL이라는 프로토콜 규칙으로 검열을 원천 차단하려는 시도는, 주권자 대신 ‘모두가 동의한 규칙’으로 질서를 대체하려는 방식입니다. 반면 비트코인에서는 F2Pool의 거래 필터링이 반복되고 채굴풀 집중도가 계속 오르내리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주권자 없는 자연상태가 생각보다 안정적이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각 체인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홉스가 말한 주권자 없이도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고 있는 셈입니다.
켈프 사건 — 리바이어던의 소환
이 실험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아비트럼에서 나왔습니다. 켈프 해킹으로 유출된 이더리움 3만 766개, 약 7,120만 달러를 12명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9명의 찬성으로 동결한 사건입니다. 평상시라면 “누구도 자금을 통제할 수 없다”는 원칙이 지켜졌겠지만, 해킹이라는 위협 앞에서 공동체는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력체를 불러냈습니다. 홉스적으로 보면 이것은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예측된 결과에 가깝습니다. 자연상태에 위협이 닥치면, 자유를 지키던 구성원들조차 안전을 위해 권력의 집중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바로 홉스가 설명한 사회계약의 작동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소수 위원회가 명령만으로 자금을 통제할 수 있다면 탈중앙 네트워크라 할 수 있느냐”는 논란은, 사실 홉스가 400년 전에 이미 답을 내놓은 질문이었던 셈입니다.
완전한 자유도, 완전한 통제도 아닌 자리
물론 홉스 이후의 철학자들은 그의 결론에 전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로크는 주권자의 권력도 결국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것이어야 하며, 그 목적을 저버리면 저항할 권리가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루소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주권은 양도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남아있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세 사람 모두 자연상태라는 같은 출발점에서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한 셈인데, 이 세 갈래 논쟁이 지금 블록체인 거버넌스 논의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지금 블록체인 생태계가 하는 일도 이와 비슷합니다. 이더리움의 FOCIL은 ‘규칙으로 제한된 자유’를, 아비트럼의 강제 포함 메커니즘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회로를 남겨두는 자유’를 설계하려 합니다. 완전한 자유도, 완전한 통제도 아닌 자리를 찾는 과정인 셈입니다. 결국 완벽한 검열저항성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기술이 미성숙해서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것은 홉스가 자연상태를 상상했던 그 순간부터 인간 조직이 안고 있던, 자유와 안전 사이의 근본적인 딜레마가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무대 위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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