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도끼로 누군가 사람을 해쳤다면, 나는 기소될 수 있을까요? 상식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답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이 지금 미국 법정에서 실제로 시험받고 있습니다. 이더리움 기반 믹싱 프로토콜 ‘토네이도 캐시(Tornado Cash)’의 공동창업자 로먼 스톰의 재판입니다. 2025년 8월 1심에서 일부 혐의만 유죄로 판단됐고, 나머지는 결론이 나지 않은 채 재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도구를 만든 사람”과 “서비스를 운영한 사람”을 어디서 가를 것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사건 개요
토네이도 캐시는 2019년 이더리움 위에 배포된 비수탁형(non-custodial) 믹싱 프로토콜입니다. 영지식증명 기술로 거래의 출처와 수취인을 가려주는 서비스입니다. 미국 재무부는 이 서비스가 70억 달러가 넘는 가상자산 세탁에 쓰였고, 그중에는 2022년 로닌 브릿지 해킹으로 탈취된 북한 라자루스 그룹의 자금 수억 달러도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OFAC은 2022년 8월 토네이도 캐시를 제재했습니다. 2025년 8월 뉴욕 남부연방지방법원 배심원단은 스톰에게 세 가지 혐의 중 하나인 무허가 자금이체업 공모에 대해 유죄 평결을 내렸습니다. 최대 징역 5년이 가능한 혐의입니다. 최대 20년이 가능한 나머지 두 혐의, 즉 자금세탁 공모와 제재 위반 공모에 대해서는 배심원단이 합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도끼 제작자 vs 대여소 주인
양측의 논리는 도끼 비유로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변호인은 스톰이 도끼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사람이라고 봅니다. 핵심 스마트컨트랙트는 배포된 뒤 수정도 중단도 불가능했고, 스톰은 사용자의 자금을 한 번도 보관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소프트웨어를 공개하는 것은 돈을 송금하는 것과 다르다”는 주장이고, 개발자와 실제 송금업자를 구분해온 미국 FinCEN의 기존 지침을 근거로 삼습니다. 반면 검찰은 스톰이 도끼를 판 것이 아니라 도끼 대여소를 운영했다고 주장합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약 250회 업데이트했고, 사용자의 약 96%가 개발자가 관리하는 화면을 통해 접속했으며, 릴레이어 인프라를 운영하고 거버넌스 토큰 TORN으로 수익을 얻었고, 범죄에 쓰인다는 통보를 받은 뒤에도 운영을 이어갔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검찰 쪽 내용은 어디까지나 주장이며, 일부 사실관계는 아직 재판에서 다뤄지고 있습니다.
법정이 시험하는 것
결국 쟁점은 “만든 뒤 어디까지 손을 떼야 도끼 제작자로 남는가”입니다. 담당 판사는 심리 과정에서 사업이 나쁜 목적으로 쓰이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유지하는 것만으로 형사책임이 성립하는지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배심원단이 가장 무거운 두 혐의에서 합의하지 못한 점은, 개발자의 역할과 범죄 의도를 곧바로 연결하는 데 부담을 느꼈다는 신호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해석입니다. 재심은 2026년 8월 법원 명령으로 2027년 4월 26일로 연기됐고, 스톰이 낸 무죄 신청에 대한 판단도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같은 정부, 다른 방향
흥미로운 점은 미국 정부 안에서도 신호가 갈린다는 것입니다. 이번 10월 재무부 산하 핀센은 믹싱 거래를 일괄 자금세탁 우려 유형으로 지정하려던 규제안을 철회하며, 정의가 지나치게 넓어 합법적 활동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법무부도 2025년 4월 토드 블랑슈의 메모를 통해 사용자의 행위나 비의도적 규제 위반을 이유로 믹서를 표적으로 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범죄 자금임을 알면서 이체하는 경우는 예외이고, 법무부 관계자는 개발자가 보호받으려면 코드가 진정으로 탈중앙화되어 있고 제3자가 사용자 자산을 통제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검찰은 스톰이 서비스를 유지하고 개선했으므로 이 조건 밖이라는 입장이며, 이번 10월에도 재판지 적격성을 옹호하는 서면을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한쪽에서는 규제안이 접히고, 다른 쪽에서는 기소가 이어지는 셈입니다.
정리하며
도끼를 만든 사람이 곧바로 처벌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도끼를 만든 뒤에도 계속 손질하고, 대여하고, 수익을 얻는다면 어디까지가 제작자이고 어디부터가 운영자인지는 아직 법정이 정하지 못했습니다. 재판은 2027년 4월에 다시 열리고, 어떤 결론이 나오든 오픈소스 개발자와 프라이버시 도구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선례가 될 것입니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어느 쪽도 단정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이 이 사건을 읽는 가장 정직한 방법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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