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드렌즈 실패 이유는 블록체인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입니다. 문서화 비용을 70~90% 절감하는 뛰어난 기술을 갖췄음에도 5년 만에 폐기됐습니다. 그 이유가 기술이 아니라 중립성이었습니다. 이 교훈이 서클 아크, OUSD, 그리고 모든 기업용 블록체인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블록체인이 혁신적인 기술이라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그런데 뛰어난 블록체인 플랫폼이 왜 망할까요. 트레이드렌즈 사례가 그 답을 보여줍니다.
트레이드렌즈란 무엇이었나
트레이드렌즈는 세계 최대 해운사 머스크와 IBM이 2018년 함께 만든 블록체인 기반 글로벌 무역 플랫폼입니다. 해운 물류는 엄청나게 복잡합니다. 컨테이너 하나가 목적지까지 가려면 수십 개 기관이 관여합니다. 선사, 항만, 세관, 화물 운송업체, 은행이 각각 서류를 만들고 주고받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류 비용이 화물 운송 비용의 15~20%에 달합니다. 트레이드렌즈가 이것을 블록체인으로 해결하려 했습니다. 모든 서류를 블록체인에 기록하면 실시간으로 공유됩니다. 중복 작업이 사라집니다. 문서화 비용이 70~90% 절감됩니다. 미국 화물 운송 시간이 40% 단축됩니다. 기술적 성과는 실제로 입증됐습니다. 175개 이상의 조직, 600개 이상의 항구와 터미널이 참여했습니다. 5,000만 건 이상의 공급망 이벤트를 추적했습니다.
그런데 왜 2022년 폐기됐나
기술이 뛰어났는데도 2022년 12월 폐기가 공식 발표됐고 2023년 1분기에 완전히 종료됐습니다.
이유가 단 하나였습니다. 중립성 부재입니다. 머스크가 전 세계 해운 시장에서 가장 큰 경쟁자입니다. CMA CGM, COSCO, MSC 같은 다른 대형 해운사들이 머스크의 플랫폼에 자신들의 화물 데이터를 올리기를 거부했습니다. 왜 우리가 가장 큰 경쟁자를 도와줘야 하나. 그 데이터가 머스크의 사업 전략에 이용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결국 경쟁사들이 들어오지 않으면서 네트워크 효과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플랫폼은 쪼그라들었고 결국 폐기됐습니다.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중립성이 없으면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 트레이드렌즈가 남긴 가장 강력한 교훈입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곳들
트레이드렌즈의 교훈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서클 아크가 9월 출시됩니다. 블랙록, 비자, 마스터카드가 검증인으로 참여합니다. 기술적으로 뛰어납니다. 그런데 서클이 만든 체인입니다. USDC가 가스 토큰입니다. 서클이 규칙을 정합니다. 뱅가드, 피델리티 같은 블랙록의 경쟁 자산운용사들이 블랙록의 홈그라운드인 아크에 자산을 올릴까요. 마스터카드가 비자와 같은 체인에서 경쟁 데이터를 노출할까요. 트레이드렌즈와 같은 구조적 의문이 생깁니다. OUSD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40개 기업 컨소시엄을 표방했지만 삼성전자, 신한금융, 두나무가 공식 참여를 부인했습니다. 오픈 스탠다드가 검토해보겠다는 답변만 받고 창립 파트너로 이름을 올렸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진정한 컨소시엄이 아니라 이름만 빌린 것이었습니다.
중립성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중립성을 단순히 아무도 소유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부족합니다. 더 정확한 정의가 있습니다.
첫째, 어떤 참여자도 다른 참여자보다 구조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지 않아야 합니다. 트레이드렌즈에서 머스크는 플랫폼 소유자였습니다. 구조적으로 유리했습니다.
둘째, 규칙이 코드로 고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특정 주체가 임의로 바꿀 수 없어야 합니다. 비트코인이 이것을 증명했습니다.
셋째, 경쟁자들이 동시에 안심하고 들어올 수 있어야 합니다. 삼성과 LG, 현대와 기아, 신한과 KB국민이 같은 인프라를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를 동시에 갖춘 것이 진정한 중립성입니다.
왜 오너 없는 메인넷만이 답인가
중립성의 세 가지 조건을 동시에 만족하려면 결국 아무도 소유하지 않는 메인넷이어야 합니다.
비트코인이 15년간 어떤 국가, 어떤 기업도 통제하지 못한 것이 그 증거입니다. 비트코인을 미국도 중국도 러시아도 동시에 보유할 수 있는 이유가 누구의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web3 메인넷에서 경쟁사가 안심하고 들어오는 유일한 조건은 그 메인넷이 누구의 것도 아닌 것입니다. 비자가 자체 메인넷을 만들면 마스터카드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구글이 블록체인을 만들면 아마존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머스크가 만들면 경쟁 해운사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트레이드렌즈 실패 이유가 남긴 질문
트레이드렌즈가 실패하면서 하나의 질문을 남겼습니다. 기술은 준비됐다. 수요도 있다. 그렇다면 누가 만들어야 하는가. 답은 하나입니다. 아무도 소유하지 않는 곳이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경쟁자가 동시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비트코인이 그 답을 이미 보여줬습니다. 사토시가 사라지면서 비트코인은 아무도 소유하지 않는 인프라가 됐습니다. 15년이 지난 지금 미국, 중국, 러시아가 동시에 보유합니다. 트레이드렌즈가 꿈꿨던 그 모습입니다.
마치며
트레이드렌즈 실패 이유는 블록체인 기술 자체의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중립성 없는 플랫폼의 실패였습니다. 이 교훈이 서클 아크, OUSD 같은 현재의 기업용 블록체인 시도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기술의 우월함이 아니라 중립성의 확보가 기업용 블록체인의 성패를 가릅니다. 다음 글에서는 알리페이가 어떻게 비자를 종속시켰는지, 권력 역전의 법칙을 깊이 분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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