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의 딜레마는 혁신가의 딜레마의 교과서적 사례가 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 1억 7,500만 개 가맹점을 가진 결제 공룡이 왜 스스로를 파괴하지 못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비자를 코닥의 운명으로 이끌 수 있는지 분석합니다. 코닥은 1975년 세계 최초의 디지털카메라를 발명했습니다. 그런데 필름 사업을 지키려고 그 기술을 시장에 내놓지 않았습니다. 결국 1996년 브랜드 가치 세계 2위였던 코닥은 2012년 파산했습니다. 비자가 지금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비자의 수익 구조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비자가 왜 스스로를 바꾸지 못하는지 이해하려면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봐야 합니다. 비자의 수익은 크게 두 가지에서 나옵니다. 첫째가 가맹점 수수료입니다. 카드 결제가 일어날 때마다 거래금액의 일정 비율을 받습니다. 전 세계 1억 7,500만 개 가맹점에서 매일 수억 건의 거래가 일어납니다.
둘째가 플로트 수익입니다. 카드를 긁는 순간 승인은 즉각 나지만 가맹점에 실제로 돈이 들어오는 것은 2~3일 후입니다. 그 사이에 비자가 자금을 보유합니다. 그 자금을 운용해서 추가 수익을 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숨겨진 수익원입니다.
이 두 가지 수익을 지키기 위해 비자는 지금의 정산 구조를 바꾸지 않습니다. 바꾸면 자신의 수익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비자가 USDC를 받아들인 방식
비자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2025년 비자가 미국에서 USDC 정산을 공식 출시했습니다. 솔라나 블록체인 위에서 기관 간 정산에 USDC를 씁니다. 스테이블코인 연동 카드를 100개 이상 국가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VTAP이라는 플랫폼으로 은행들이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게 했습니다. 9개 블록체인을 지원합니다. 겉으로 보면 적극적으로 온체인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숫자를 보면 다릅니다. USDC 정산이 7일 윈도우 안에서 처리됩니다. 5영업일에서 7일로 늘어난 것이 비자가 자랑하는 개선입니다. 즉시 정산이 아닙니다. 블록체인의 즉각성을 비자의 배치 처리 안에 가두어버렸습니다. 새 술을 헌 부대에 담은 것입니다.
코닥이 겪은 것과 같은 구조
코닥이 디지털카메라를 발명하고도 필름 사업을 지키려다 사라진 것처럼 비자도 같은 구조에 갇혀 있습니다. 비자가 즉시 정산을 도입하면 플로트 수익이 사라집니다. 거래 수수료를 낮추면 가맹점 수수료 수익이 줄어듭니다. 분기 실적이 즉각 타격을 받습니다. 주주들이 반발합니다. 경영진 임기 안에 그 결정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비자는 USDC를 받아들이면서도 7일 정산에 가둡니다. 블록체인이라는 마케팅 용어를 쓰면서도 플로트 수익을 지킵니다. 이것이 혁신가의 딜레마입니다. 기존 수익을 지키려는 본능이 진정한 혁신을 막습니다.
가맹점이 느끼는 현실
가맹점 입장에서 비자의 변화가 실제로 체감되는지를 보면 명확합니다. 비자가 USDC를 쓴다는 뉴스가 나와도 가맹점 계좌에 돈이 들어오는 속도는 그대로입니다. 수수료도 그대로입니다. 가맹점에게 비자의 온체인 이동은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반면 스테이블코인 기반 직접 결제는 다릅니다. 한국에서 로드시스템 모델처럼 외국인 관광객이 QR로 결제하면 10~30초 안에 가맹점에 원화가 들어옵니다. 수수료는 카드보다 훨씬 낮습니다. 가맹점이 직접 체감하는 차이입니다. 가맹점들이 현금 결제에 할인을 주는 이유가 2~3%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서입니다. 같은 즉시성과 낮은 수수료를 스테이블코인이 제공한다면 가맹점은 움직입니다.
비자가 자기 파괴를 선택한다면
비자가 코닥의 운명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7일 정산을 버리고 즉시 정산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플로트 수익을 포기해야 합니다. 카드 수수료를 급격히 낮춰야 합니다. 거래량으로 수익을 만드는 모델로 전환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결정들이 모두 비자의 핵심 수익을 스스로 깎는 것입니다. 코닥이 필름을 포기하지 못한 것처럼 비자도 플로트 수익과 카드 수수료를 포기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스스로 자기 파괴를 선택하는 것은 역사상 대형 조직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외부의 경쟁 압박이 강해질 때 어쩔 수 없이 변화합니다. 그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습니다.
비자의 진짜 강점은 무엇인가
비자가 단기간에 무너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두 가지 강점이 있습니다. 1억 7,500만 개 가맹점 네트워크입니다. 이 양면 플랫폼의 네트워크 효과는 쉽게 깨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소비자 신뢰입니다. 전 세계 수십억 명이 비자카드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이 강점들이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알리페이가 중국에서 비자의 가맹점 네트워크 효과를 QR코드 하나로 뒤집었습니다. 같은 일이 다른 시장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마치며
비자 딜레마는 혁신가의 딜레마가 금융 공룡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입니다. 기존 수익 구조를 지키려는 본능이 진정한 온체인 전환을 막고 있습니다. 코닥이 디지털카메라를 발명하고도 필름을 포기하지 못해 사라진 것처럼 비자도 플로트 수익과 카드 수수료라는 필름을 포기하지 못하면 같은 운명을 맞을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트레이드렌즈가 실패한 이유를 분석합니다. 중립성 없는 블록체인이 왜 반드시 실패하는지를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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